저희 아버지는 평생 농사를 지으신 분입니다. 어릴때 생각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힘든 농사일을 마치시고 부엌에서 유리컵에 소주를 가득부어 드시던 모습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변변찮은 안주도 없이 마른멸치에 고추장을 찍어드시던 아버지가 참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좋아하는 마른 오징어채를 안주로 드시고 어디에 넣어두시나가 더 궁금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공짜 영화표가 두장 생겨서 아버지께 어머니와 영화 한번 보고 오세요라고 전화로 말씀을 드렸더니 "영화는 세월 좋은 사람들이나 보는거지, 우리같이 바쁜 농촌 사람들이 보는거라냐? " 라며 단호하게 거절을 하십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지금껏 결혼해서 영화관도 한번 못가봤는데 이번에 한번 가보면 좋겠다고 아쉬워하셨습니다.

며칠 후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의 아버지와 들뜬 표정의 어머니께서 광주로 나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덕에 아버지랑 영화도 보러간다고 참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표를 끊고 극장안까지의 안내는 동생이 맡았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오신 아버지께서는 극장 영화 소리가 얼마나 큰지 귀가 다 아파 죽겠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웃으시면서 영화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어머니께서도 흐뭇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셨습니다.

지난 주에 영화표가 2장 생겨서 고향집에 전화를 했더니 아버지께서 전화를 받으십니다.

"아버지, 이번 주말에 시간되시면 어머니하고 영화 보러 나오세요."
"그래, 재미있는 영화 뭐 나왔다냐?"

예전 같았으면 바쁜데 무슨 영화냐고 손사래를 치셨을텐데 저희 아버지 많이 변하셨죠? 전 요새 국가대표가 재밌다고 해서 국가대표 보여드릴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TV 영화소개 프로에서 애자 예고편을 보시고는 애자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애자를 보여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영화 보러나온 아들과 며느리의 모습이 여전히 신기하신지 재미있어 하십니다.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닌데 자식이 드리는 작은 거라면 마냥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는 분은 역시 이세상에 부모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볼때 연세가 지긋하신 부모님이나 딸과 함께 영화를 보러오신 어머니들을 영화관에서 보면 우리 부모님도 영화 보여드리면 참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함께 영화관 데이트도 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평소 영화나 연극같은 문화생활을 즐기시는 도시의 부모님들께는 영화 한편 보는일이 쉬운 일이지만 농촌에 계신 저희 부모님께는 그동안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버지 성격상 당신이 영화를 보고 싶어서 돈을 내고 영화를 본다는 일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우리 부모님이 그러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들어가는 돈은 아끼고 아껴서 자식들 먹고 입히는데 쓰실려고 하시죠. 요즘 가을이라 날도 선선하고 참 좋습니다. 주말에 부모님과 함께 영화 한편 보시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