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저녁, TV를 보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립니다. 누구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하고 나가보니 어머니께서 큰 수박 한통을 들고 오셨습니다. 얼른 수박을 받아들고 들어와 어머니께 시원한 물한잔을 드리고 선풍기를 세게 틀어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아버지와 함께 작은 아버지 차를 타고 인천에 다녀오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모습이 보이지 않아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집(고향집)에 먼저 가셨어요?"
"아니, 시장에 신발 사러 가셨다."
"무슨 신발이요?"
"오늘 결혼식 신고간 새구두가 하루도 안신었는데 밑창이 다 망가져서 또 신발 사러가셨단다."
"예? 뭔 구두가 하루도 안신었는데 다 망가져요?"
"그러게 말이다.  네 아버지가 시장에서 만원짜리 구두를 싸다고 사서 오늘 신고 가셨는데 
휴게소에서 잠깐내려서 화장실 가는데 구두 뒷굽이 빠져버린거 있지."
"정말이요? 황당하셨겠네요." 
"그래서 본드 사서 겨우 붙이고 나니까 이젠 구두 밑창이 다 조각조각 갈라져서 떨어져버린거야.
으이그, 네 아버지를 누가 말리냐? 시장에서 수박사러 돌아다니면서 앞으로 뭐살때 너무 싼걸로만
사지 말고 괜찮은 걸로 사시라고 잔소리를 좀 했더니 아버지 삐치셨다."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한손에는 어머니 핸드백을 들고 한손에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오셨습니다. 어머니의 하얀 핸드백을 들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재미 있습니다.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구두 보기에는 멀쩡 한데요" 라고 말씀을 드리자 아버지께서는 씩 웃으시며 구두 밑을 보여주시는데 아이고, 구두밑창 부분이 아예 다 떨어져 나가고 없습니다.


아무리 시장표 싸구려 구두라고 해도 그렇지 무슨놈의 구두가 하루를 못버티나 싶어 구두를 살펴보니 윗부분은 제법 괜찮은데 밑창 고무가 이상합니다. 질이 낮은 고무를 재활용해서 썼는지 떨어지고 남은 고무덩어리가 조각을 이어붙인것처럼 엉성합니다. 아버지께 지금 당장 바꾸러가자고 말씀을  드리니 근처 시장이 아니라 집에서 꽤 떨어진 시장이라 오고가고 시간버리고 교통비 버리고 차라리 신발 잃어버린 셈 치고 잊어버리자고 하십니다. 제가 이건 만원짜리 싼 구두가 아니라 하루 만원짜리 비싼 일회용 구두를 신으셨다고 하니 씁쓸하게 웃으십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고향집에 가시고 난 후 쓰레기봉투에 담긴 아버지의 구두를 보니 마음이 좀 무겁습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신 아버지 덕에 우리 형제들은 먹고 배우고 입는데 크게 부족함이 없었지만 정작 당신의 옷과 신발은 늘 시장표 싸구려였습니다. 질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싸구려 제품을 판매하는 시장상인의 얄팍한 상술보다도 평생 우리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부르튼 아버지의 발을 아직 편안하게 감싸드리지 못하는 것같아 제자신이 더 밉고 죄송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