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군대 갔다온지 얼마 안된 2~30대 남자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가끔 고깃집에서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얼큰하게 술에 취하셔셔 뻘개진 얼굴로 군대이야기 하시면서 옥신각신 장난스레 대화를 주고 받는거 보면 대한민국 남자에게 군대는 죽을때까지 잊을수 없는 참 특별한 경험인 모양입니다.
저도 그래서 군대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그렇다고 절대 포스팅 거리가 떨어진게 아닙니다.^^;
때는 그러니까 제가 경기도 연천에서 군복무 하던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근무한 GOP(General Out Post 남방한계선을 따라 설치된 남측 경비초소)경계부대 특성상 GOP투입시 경계근무에 필요한 소대인원을 꽉 채워서 들어갔다가 철수해서 페바부대(GOP후방부대)로 나오면 GOP에서 짬 잔뜩 먹은 병장들이 우르르 전역을 하고 다시 신병들이 우르르 들어옵니다.
그런데 전 운없게도 이 신병들이 들어갈때 막차를 타고 들어가는 바람에 소대 막대, 중대막내를 8개월 넘게 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나중에 GOP투입시 신병들이 좀 들어와서 그때 좀 군생활 할만하더군요. 전 병과가 81mm박격포라 주간 경계근무를 섰었습니다. 주간근무도 그렇게 편한건 아니었지만 주간에 근무서고 야간에 잘수 있어서 야간 경계근무 보다는 더 낫더라구요.
그날도 점심을 먹고 부사수와 함께 주간 경계근무에 투입되었습니다. 아마 가을쯤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전 4~5M 높이의 고가초소에 올라가 전번 근무자와 근무교대를 하고 쌍안경으로 전방과 초소근처를 살폈습니다. GOP앞에 GP(Guard Post 최전방 감시초소) 있긴 하지만 GOP도 최전방이라 1초도 긴장감을 늦출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근무와 늘 똑같은 환경에 익숙해지다보면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긴장감은 점점 무뎌지게 됩니다.
점심도 먹었겠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살랑살랑 눈꺼풀이 자꾸 감겨옵니다. 하지만 전 어금니를 꽉 깨물며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 이 신성한 임무에 어찌 졸음따위로 막중한 책임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
그때였습니다.
"C상병님!! 빨, 빨리 밖으로 좀 나와보십시오!!"
전방의 적이 아닌 후방 순찰자의 서든어택을 살피던 부사수 J일병의 다급한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습니다.
"왜, 뭐땀시 그라냐? 소대장님 오시냐?"
"그, 그게 아니라 ..."
"워매? 이것이 뭐다냐?"
그것은 소대장님도 아닌, 그렇다고 북한군도 아닌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불꽃이었습니다.
불꽃은 철책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언덕 근처 땅속에서 솟아올랐는데 그 불꽃은 어릴적 분수불꽃이라고 부르는 폭죽처럼 치이익~!! 소리를 내며 약 10M높이로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냅다 인터폰으로 야간소초 상황실로 상황보고를 했습니다.(당시 초소 인터폰은 모두 야간소초 상황실과 연결이 되어 있었고 제가 속해있는 초소와는 96K무전기로 근무교대만 보고했습니다)
"여기 xxx고가초소 근무자 C상병입니다. 지금 철책후방 2~3미터 언덕 땅속에서 불꽃이 치솟고 있어요."
"네? 뭐라고요? 불이 났다고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인원 보내드릴께요"
전 인터폰을 내려놓고 J일병을 껴안았습니다.
"J야, 이제 우리 군생활 끝났다. 이건 분명 땅굴이다."
"크흑~ C상병님, 그동안 고생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랍쇼? 야간소초 인원들이 철책통문을 따고 철책으로 들어오는게 저기 보이는데 치솟던 불꽃이 사그라들기 시작합니다. 잠시후 불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저와 J일병은 뭐라도 홀린듯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불꽃이 솟던 지점에서 야간소초 부소대장이 어이 없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불이 어디 났다는 거냐?"
"......."
"불이 어디 났냐고!!!!!!"
"그...그게 아까 거기서..."
야간근무 서고 낮에 자는 야간소초 근무자들이라 잠을 깨워서 그런지 다들 신경이 날까롭습니다. 다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합니다.
"저 새끼들, 담배 피다가 불낸거 아냐?"
"쳇, 졸다가 꿈꿨는가보네."
"아저씨, 근무 좀 똑바로 서이소~"
"으...이 자식들을 그냥 K3로 갈겨버릴까보다"
"C상병님, 안됩니다. 참으십시오!!"
근무시간이 다 되서 근무교대를 하고 소초에 돌아오니 야간소초에서 연락이 왔는지 이거 땅굴이면 이제 헬기타고 고향가는 일만 남았네, C랑 J랑 군생활 완전 풀렸네, 이거 최소한 포상휴가 아닌가하는 말들이 쏟아집니다. 저와 J일병은 그저 맡은바 임무를 했을뿐이라며 아무렇지도 않은듯 표정관리를 했지만 뒤로 돌아서는 땅굴 포상금을 어디에 쓸지 이미 다 계획을 짜놓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뒤 대대장님이 오셔서 불꽃이 치솟은 위치를 물어보고 가시더군요. 그렇게 기대에 잔뜩 부풀은 하루가 가고 며칠 후 야간 점호시간에 소대장님께서 불꽃이 치솟았던 곳을 확인해본 결과 치솟은 불꽃은 땅굴이 아니라 6.25전쟁때 사용된 포탄에서 흘러나온 화약이 땅속에 묻혀있다가 햇볕과 반응을 해서 발화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날따라 자기 전에 피는 담배 한개피가 참 씁쓸하더라구요. J일병도 내심 실망스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때 그게 제 5땅굴이었으면... 제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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