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 한 친구를 많이 미워했다. 그 친구도 나를 몹시 싫어했다. 지금은 왜 서로 감정이 상했는지 기억도 나진 않지만 내가 아직도 그 친구를 기억하는건 한가지 사건때문이다.

중간고사였던가?  뜻밖에 시험성적이 잘 나왔다. 어머니는 기쁜 마음에 나를 시내로 데리고 가 비싼 메이커 운동화를 사주셨다. 그전에도 메이커 운동화는 사 신었지만 시장에서 오천원, 만원짜리 신발을 사시는 아버지가 마음에 늘 걸려 운동화를 살때도 마음에 드는것보다도 젤 싼걸 사 신곤 했었다.

며칠 후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운동화 뒤가 이상하다. 살펴보니 운동화 뒤를 누군가 칼로 반으로 잘라놨다. 그녀석이 한짓이 분명했다. 화가 나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하지만 날 미워하는 그 녀석이 내가 화내고 슬퍼하는 걸 보면 더 고소해 할까봐 아무렇지도 않게 신발을 신고 집에 갔다.

집에가서 분해서 울었다. 넉넉치 못한 살림에 시험 잘봤다고 비싼 운동화 사준 어머니께 미안해서 울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목격자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그녀석이 한짓이 분명한데 증거가 없었다. 난 그 신발을 본드로 붙여 뒷굽이 너덜너덜 해질때까지 오래오래 신었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이었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한 친구가 옆으로 다가왔다.

"너, 중학교때 새신발 누가 칼로 찢지 않았냐?"
"응, 그거 어떻게 아냐? 그거 아는 사람 별로 없는데..."
"누가 그랬는지 아냐?"
"응...짚이는 새끼가 하나 있는데, 증거가 있어야지."
"Y야, 걔가 너 미워서 찢었다더라."
"그 새낀 줄 알았다. 나쁜 새끼!!"

군 제대후 공사장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한번은 모텔 공사장에 갔는데 체구가 나보다 좀 작은 비슷한 나이의 남자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함께 일을 하다보니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다가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나이가 어떻게 되요?"
"네, 스물 넷입니다."
"내 동생이랑 나이가 같네. 그럼, 학교도 여기에서 다녔겠네요."
"네, J중학교 K고등학교 나왔습니다."
"어? 내 동생도 J중학교 나왔어요."

순간 반가우면서도 느낌이 이상했다.

"동생 이름이 어떻게 되는데요?"
"Y에요. 알아요?"

Y였다. 내가 Y의 이름을 어떻게 잊겠는가. 이 사람이 그 녀석의 형이라니...순간 웃음이 나왔다. Y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욕이라도 해줄까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얼마나 미웠으면 몰래 신발을 칼로 찢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요, 다른 반이었나봐요."
"고등학교때 부모님이 교통사고 나서 두분 다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동생도 아르바이트 하면서 학교 다니고 있어요."

Y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Y에 대한 미움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  남아있던 불쾌한 기억들도 모두 흩어졌다.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요? 내동생은 아는지 물어보게요."

Y의 형이 물었다.

"P입니다. 오래되서 이름 말해도 모를거에요."

난 거짓이름을 둘러댔다. Y는 그일을 기억할까? 만약 내 진짜 이름을 말해줬더라면 Y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세상이 좁다고 하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그리 많은 인생을 산건 아니지만 참 재밌는 일중에 하나다.